Wednesday, November 21, 2012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상실의 시대도 읽지 않았고 한 때 모든 사람들이 읽었었던 1Q84도 지루함을
참지 못해서 3권을 읽다 포기했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하여
조금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이 책을 사서 읽은 이유는 학교교수님이 이 작가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사봤다.

김영진 교수님 무라카미 하루키 북콜렉션 (http://youngzeen.com/haruki/)

글에도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복주머니니까요." 라고 쓰여있는 것과 같이 나도 처음 부분은 심심했는데
뒷부분은 재미있게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친구들인 안자이 미즈마루와
와다 마코토의 해설 대담으로 정말 재미있게 책을 마무리했다.

이 책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미발표작들도 수록되어있지만 하루키가 번역한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가 얼마나 레이먼드 카버와 J.D. 샐린저를 좋아하는 지에
대한 글들은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아니라 독자와 독자의 관계로 만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때문에 하루키가 좋다고 한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능이 많아 그림도 잘 그리고 요리도 잘하고, 피아노, 마라톤
등도 하는 만능 재주꾼이라고 한다. 마감도 철저히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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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부분의 국면에서 이야기는-이를테면 백마술로서-달리 예를 찾을 수 없는
강력한 치유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우리가 뛰어난 소설을 읽을 때 자주 체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권의 소설이, 한줄의 말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을 구제한다.
다만 두말할 필요 없이 픽션은 늘 현시로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
픽션은 우리의 실재를 깊게 삼겨버린다. 예를 들어 콘래드의 소설이 우리를 실제로
아프리카의 깊은 정글 속으로 끌고가듯이.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픽션이 아닌 다른 곳에서 현실세계와 마주선
우리 자신을, 아마도 픽션과 힘을 상호교환하는 형태로, 완성해나가야만 한다.  p235


탤로니어스 멍크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당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했다.
"새로운 음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소설을 쓰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드넓은
미지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비옥한 대지가 개척을 기다리고 있다.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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