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 2012

뉴질랜드




















6년 전, 중2의 나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1년동안 있었다. 한 번 홈스테이를
옮기기도 했지만 1년동안 키위홈스테이를 했었고, 일주일에 두 번씩은 돌봐주는
가디언아저씨네 집에서 놀기도 했다. 내 또래의 여러 명의 한국인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다 같은 학교에 다녔다. 한국어를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다 다른 반에 배정되었지만 ESL시간에 만나 한국말로 떠들어 혼나기도 했었다.

위의 사진은 Piha beach이다. 나도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었던 것 같다.
검은 모래가 예뻤고 사람도 없었고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에
이미지가 꽤 오래 남아있는 것 같다.






















노란 꽃이 있는 사진을 찍을 때가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해서 찍으면 예쁘겠다해서
찍었는데 인화하고 보니 위아래가 조금씩 짤려서 아쉬워했던 것 같다.
장소는 기억이 안나지만 보통 뉴질랜드의 해변은 다 예뻤다.






















나는 스완슨(Swanson)의 지붕이 파랗고 맥스(Max)라는 개가 있고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집에서 3개월 정도 살았다. 위의 로즈(Rose)할머니와 에릭(Eric)할아버지와 같이 지냈는데
두 분이 이혼을 하셔서 남은 8개월 정도 다른 곳에서 살게 되었다. 내 이름은 받침이 없고
부르기 쉬운 이름이라 나는 별다른 외국 이름을 쓰지는 않았다.
지금은 다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같이 사신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로즈할머니와 등하교시간에 말을 주고 받은 것이 초기 뉴질랜드에
적응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로즈할머니도 내가 무엇을 말하는 지
잘 못 알아 들으셨을 테고 나도 로즈할머니가 무엇을 말하는 지 잘 몰랐었는 데
어떻게든 서로 알아들을려고 했던 것 같다. 처음 홈스테이하는 집이어서 그런지
많은 것이 기억이 난다. 할머니 옆에 있는 문으로 나가면 작은 분수와 나무 그네가 있는
정원이다. 정원 옆으로는 기차가 지나다녔는 데 놀러온 할머니의 손녀들은 그 기차가
오는 것을 좋아해서 기차가 오기를 기다렸고 기차가 오면 소리 질렀다.
뉴질랜드에 한국의 지하철같은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근처에 사는 할머니의 딸 버네이타(Benita)의 집에 자주 놀러갔다. 버네이타네도
규진이를 홈스테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할머니가 나를 픽업하러 오실 때
같이 데려갔다. 위에 있는 애기는 코트니(Courtney)이고 밑에 있는 남자아이는
해리슨(Harrison)으로 버네이타의 딸과 아들이다.






















두번째 홈스테이는 콕스(Cox)가족에서 했다. 학교에서 걸어다닐 만큼 학교에서
가까운 데에 살고 있었고 분홍색지붕에 분홍색 벽돌의 집이었다. 이 가족은
먹는 것이 부실했는 데 다른 홈스테이와 달리 나를 가족의 소풍에 꼭 데려가 줘서
참 고마웠다. 다른 홈스테이들은 보통 돈을 내라고 하거나 가디언아저씨네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파란 색 비니를 쓰고 있는 아이가 엠마(Emma)인데
이 아이는 아스퍼거스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다. 약한 자폐증이라고 보면 되는 데
집중을 하기 어려워 하고 감정의 기폭이 심하다. 그래도 그만큼 좋은 것은 좋다고
표현도 잘하고 끝까지 잘 지내게 되서 다행이었다. 엠마는 또 동물을 좋아해서
방에 여러 동물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왼쪽이 엘레노어(Eleanor), 오른쪽이 헤나(Hannah)이다. 내가 학교를 갈 때면
창문에 붙어서 유리창을 두들기고는 했다. 헤나는 전형적인 세자매 중 둘쨰였다.
관심을 받기를 원했고, 같이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겁도 많아서 날아오는
공도 잘 못잡는 그런 애였다. 울기도 잘 울었던 것 같다. 엘리는 애기여서
많이 안고 다녔던 것 같다. 밤에 동화책을 읽어달라기도 했었고 특히 내가
엘리를 잡고 빙빙 돌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생긴게 너무 예뻐서 앨범에
특히 많이 있기도 하고 사진을 정말 잘 찍혀주었다.














































































































이건 웰링턴(Wellington)에 갔었을 때였다. 오클랜드에서는 눈을 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애들은 눈을 참 좋아했었다. 차로 지나가는 도중에 엠마가
눈을 꼭 만져보고 싶다고 해서 내려서 눈을 들고 찍은 것 같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엠마만 웃고 있고 헤나랑 엘리는 추워서 인상을 쓰고 있다.




















로즈할머니네서 살 때는 예진이네 홈스테이에 자주 놀러갔었다. 켈리(Kelly)아줌마도
정말 착했고 아마도 예진이 생일, 심지어 켈리의 아이들의 생일파티에도 갔었던 것 같다.
위의 애는 키라(Keira)이다. 키라 위에 카발리(Kabali)라고 있었는 데 사진은 없다.
굉장히 외향적이었던 것 같다. 나를 처음 봤었을 텐데도 참 잘 놀았던 것 같다.












































얘는 키라 동생으로 레미(Remi)다. 잘생긴 남자애기라서 예진이랑 나랑 많이 예뻐했다.
















































나랑 제일 친했던 친구들이다. 왼쪽은 제시카(Jessica), 오른쪽은 카산드라(Cassandra).
체육시간에 조를 짜서 공놀이를 했었는 데 그 때 같은 조가 되서 친해졌다.
뉴질랜드에서 백인친구들이 별로 없었는 데 거의 유일하게 카산드라가 백인이었다.
제시카의 생일파티에 놀러가기도 하고 둘의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나중에
점심시간에는 같이 뛰어다니고 놀기도 했다. 카산드라는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또 글쓰는 것도 좋아했던 것 같다. 얘네랑 같이 놀고 영어가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다.
보통 못 알아듣는 나를 무시하거나 한 번 더 말해주지 않거나 그랬는 데 정말 고맙게도
다 들어주고 한 번 더 말해주고 그랬다.


















































뉴질랜드에서 과외도 했었다. 이 분의 성함이 기억이 잘 안난다. 근데 정말 이 분과는
좋은 기억밖에 없다. 거의 뉴질랜드에 오자마자 과외를 했는 데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에 오셔서 떠들기도 하고 숙제도 같이 하고 시험도 보고 그랬었다.
뉴스기사를 잘라오시면 몇 개 중에 내가 골라서 뉴스기사를 읽고 독후감형식으로
소감문 같은 것을 쓰는 것이 보통의 숙제였다. 문법을 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일주일에 네 다섯권씩 얇은 책들을 주셨다. 보통 학교에 있는 우리 학년이 읽어야 할
책은 나한테 너무 어려워서 이 얇은 책들을 재밌게 읽었었다. 선생님이 들고 계신
초록 드레스는 내가 파티 때 입고 갔던 드레스이다. 레이첼의 아는 분이 빌려줘서
나는 고가의 드레스를 안 사도 됬었다. 이 날이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안기도 했고 내 그림이 마음에 든다며 벽에 붙여둔 그림을 선물로 드렸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아니면 안 좋은 기억들은 어느 새 다 잊혀진
것인 지도 모른다. 페이스 북으로 과외선생님만 빼고는 다 연락이 되어서 참 다행이다.
애들도 이미 엄청 컸고, 친구들도 점점 성인이 되어가고 있다. 뉴질랜드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 그 때는 밤에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버스도, 택시도 한 번도 안 타봤었다.
그리고 친구들도 보고 싶다. 뉴질랜드에 갔다 온 것이 벌써 6년 전이라니 시간은 정말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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