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18, 2012

정원이























정원이는 1학년 1학기 때 같은 반이었다. 나는 낯가림이 좀 있어서 쉽게 처음보는
사람과는 빨리 친해지지 못하는 데 밝은 정원이의 성격덕분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미술을 매우 늦게, 3학년 2학기나 되서야 시작해서 모든 것에
어리둥절 있었는 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작한 것이 더 빨리, 더 열린 마음으로
접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1학기 때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Drawing Concepts 였는데 한 주제를 갖고 모두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정원이는 특히 신기한 주제들을 많이 가지고 왔던 것 같다.
교수님이 좋아하셨건, 좋아하시지 않으셨건 그건 큰 문제가 안된다고 교수님도
말씀하셨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 그 범위가 가장 넓었던 수업이 DC였던 것 같다.

위 사진들은 정원이네 집에 가서 찍은 것들이다. 삼각대들고 사진만 찍으면 되는 줄
알았는 데 정작 가서는 뭘 찍을지도 몰라서 결국 몇 장 찍지도 못했다.
나는 그냥 일상 사진을 예쁘게 찍는 것을 목표로 했는 데 그 '일상'이라는 것 조차
목표에 맞춰 찍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는 그저 정말 일상 속에서,
길을 지나다니다가, '혼자'찍는 것을 좋아했는 데(지금도 그렇지만) 옆에 상대방이 있을 때,
상대방을 찍어야 할 때, 삼각대를 놓고 같이 찍어야 하는 것이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도 정원이한테 정말 고맙다. 내가 저 때 사진교수님에 대한 배신감(?비슷한 것으로)으로
학교에서 울고 정원이네 집에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쯤 늦게 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평하나 없이 정말 잘 찍혀주었다. 나도 빨간 립스틱, 인조속눈썹, 파란 아이섀도우같이
평소엔 하지도 않는 화장품을 들고 갔다. 그 전에 본 사진이 있어서 그것을 따라해볼까
했는 데 역시 전혀 다르게 찍혔고 그저 재미있는 추억에 머물러있다.























예쁜 정원이. 정원이는 3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했다. 난 그땐 정원이를
이해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부모님께 약간 죄송한 마음은 있지만
그때는 그마음이 좀더 심했다. 일단 죄송한 게 좀 많았는데 미술을 늦게 시작한 것,
돈 많이 드는 인쇄값이니 재료값이니해서 카드지출이 많았던 것, 고등학교 때는 5만원
받아도 남던 용돈을 40만원을 받아도 모자라서 허덕인다는 것 등 이래저래
돈으로 엄마 아빠한테 좀 미안해서 휴학한다는 말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만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마 3학기 때 사진수업이 흔들리면서
내 마음도 흔들린게 아닌가 싶다. 여튼 정원이는 그렇게 휴학을 해서 미국도
갔다오고 지금은 유럽에 있다.

아 맞다 위의 사진에서 정원이가 쓰고 있는 모자는 바나나 모자이다.
털모자를 사러간다길래 가로수길에 같이 갔다.
무슨 색 모자냐고 물었는데 바나나색이래서 아 노란색 모자구나했는데
가보니 정말 바나나였다. 저게 흑백사진이라서 좀 그렇지만 바나나가 까져있는데
그 부분에 머리를 넣는 형식의 재미있는 모자이다. 그만큼 정원인 재밌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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